상단 이미지 입니다.

학과소개

  • 글씨크기확대
  • 글자크기기본
  • 글씨크기축소
  • 인쇄

학과개항

설립기

1967년 포항에 국내 최초, 최대의 일관제철소인 포항종합제철(주)이 기공되면서 금속소재 공업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러한 국내산업 여건의 변화와 국가적인 필요에 의해 우리 대학교에도 국내 대학 중에서는 비교적 빠른 1968년 12월에 교육부로부터 당시 문리과대학내에 금속공학과의 설립허가를 받았으며, 당시 화학과 홍순영 교수가 본 학과의 설립 및 교과과정 확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1969학년도에 첫입학생을 모집하게 되었다.
학과 설립 이후 30명의 첫 신입생 선발과 함께 부임한 조현기 교수는 초기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학과 발전의 기틀을 훌륭하게 마련하였다. 그리고 1970년에는 전자공학과, 고분자공학과, 기계공학과와 함께 본 학과는 공과대학으로 개편되었다. 1970년 6월에는 화학야금 분야를 담당할 윤병하교수가 부임하여 강의 뿐 아니라 본격적인 산학 협력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71년 9월에는 철야금학을 담당할 김동의 조교와 물리야금학을 담당할 정인상 조교가 부임함으로써 강의와 학생지도에 어느 정도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1970년대

1973년 2월에는 19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하여 국내 금속관련업체에 대한 고급인력공급의 일익을 담당하기 시작하였으며, 같은 해 3월에는 대학원 석사 과정이 개설되어 첫 입학생이 들어옴으로써 연구 기능을 겸비한 학과로서의 역할을 시작하였으며, 1974년 4월에는 김동의 조교가 교수로, 1975년 4월에는 정인상 조교가 교수로 임용되었다. 1975년 5월에는 주조공학을 담당할 홍준표 조교, 1976년 5월에는 표면처리 및 부식, 방식을 담당할 본 학과 출신의 김대룡 조교가 부임함으로써 많은 강의를 외래 강사에 크게 의존했던 시기에서 탈피하여 충실한 강의와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학과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1976년도부터는 입학 정원이 40명으로 증가하여 교육의 질적 향상 외에도 양적인 성장을 하게 되었다. 한편, 설립 당시 강의실은 농화학관(당시), 교수 연구실은 교수회관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공과대학 1호관(1971 ­ 1976. 8.) 시대를 거쳐 1976년 9월에 제2차 IBRD 교육차관에 의해 건립된 현 공대 3호관에 정착하였으며, 공대 3호관과 함께 건립된 공대 4호관을 실험 및 실습동을 확보하게 되었다.
또, 1979년부터 대학원 입학생 수의 증가와 학문의 전문화를 위해 대학원, 석·박사 과정이 금속제련공학전공과 금속재료공학전공을 분리 운영되었다. 한편 1977년에 일본 도호쿠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조현기 교수를 필두로, 김동의 교수는 1980년에 우리 대학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1981년에는 정인상 교수가 일본 도호쿠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또 1982년 3월에는 충남대학교로부터 본 학과 출신인 박경채 교수가 부임하여 금속가공학 분야를 담당하였으며, 1983년 3월에는 한국과학기술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독일 Max-Planck 연구소에서 2년간 박사후 연구과정을 마친 권오종 교수가 부임하여 분말야금학 분야를 담당함으로써 본 학과는 금속공학의 주요 분야를 망라하는 8명의 교수진을 갖게 되었다.

1980년대

한편, 1981년에는 졸업 정원 50명, 입학정원 65명으로 급격한 양적 팽창이 있었으며, 동년 3월부터 박사 학위 과정이 신설되어 더욱 내실 있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본 학과의 교육 및 연구 환경이 안정 되면서 더욱 더 내실 있는 발전을 도모하였다. 1984년 8월에는 본 학과가 사용하던 공대 3호관의 5층 증축 공사가 완성되어 그 동안 부족했던 교수 연구실과 강의실 및 실험실습실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며, 국고지원과 교육 차관에 의한 실습 및 연구용 기자재가 획기적으로 보완되었다. 또 1985년 설립된 산업대학원에 금속공학전공을 설치하여 산업 인력의 재교육과 산학협동연구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본 학과의 꾸준한 연구분위기 향상에 힘입어 석·박사과정 입학생이 20명을 넘게 되었고, 이들과 교수들의 연구성과는 국내 관련 학회를 주도할 정도로 양적 및 질적인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 1985년에는 김대룡 교수가 한국과학기술원에서, 홍준표 교수는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각각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학과내 연구활동이 더욱 충실하고 활성화되는 전기가 되었다. 1986년에는 본 학과에서 11년간 재직하였던 홍준표 교수가 연세대학교로 옮겨갔으며, 1987년 3월에는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응고가공학을 전공하여 공학박사를 취득한 후 현대자동차 중앙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예병준 교수가 부임하여 교수진이 다시 보강되었다.
1980년대에는 대학의 자율화가 대폭 신장된 가운데 입학 제도 및 관리 체제의 큰 변화가 있었으나 본 학과는 연구 중심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확실한 기반을 쌓았다. 그리고 1991년에는 박경채 교수가 일본 오사카 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0년대

1994년에는 국내 금속관련 산업체의 급격한 팽창에 의해 고급인력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본 학과의 대학 입학 정원이 60명으로 증원되었으며, 국내 소재관련 산업의 다양화에 따라 본 학과의 졸업생 진출분야도 종래의 금속, 기계산업분야 외에 전자, 화공, 정밀 화학분야 등으로 다양화되었다. 한편, 본 학과에 부임한 이래 강의와 연구에 열성적으로 몰두하시던 김동의 교수가 1994년 7월에 연구 중 과로로 쓰러져 끝내 운명함으로써 학과 내 모든 교수와 학생들에게 크나큰 슬픔을 남겼다.
그리고 1995년 3월에는 미국 MIT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한 허증수 교수가 부임하여 금속제련 교과목을 강의하게 되었다. 강의와 연구에 매우 바쁜 중에서도 본 학과의 윤병하 교수, 조현기 교수, 그리고 정인상 교수가 공과대학 학장으로서 대학발전에 봉사하였으며, 조현기 교수는 지방소재 대학교수로서는 지금까지 유일하게 대한금속학회장(1996)으로 봉사함으로써 학회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리고, 일년간 과중한 강의 부담으로부터 해방되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연구교수로서, 경북대학교 지원에 의하여 윤병하(1996), 조현기(1997), 정인상(1998), 김대룡(1999) 교수가 재충전의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예병준 교수는 한국과학재단 지원으로 1991년에 1년간 미국 Univ. of Wisconsin에서 연구를 하였으며, 권오종 교수는 1995년에 1년간 미국 Univ. of Maryland에서 교육부 지원으로 연구를 함으로써 더욱 활발한 연구활동의 계기가 되었다.
1999년은 학과창설 30주년을 맞이하여 졸업생과 재학생 및 학과교수들 모두 발전할 수 있는 대화와 단합의 장을 마련하였으며, 경북대 최초로 학과 동창회 장학 기금을 운용하여 재학생들의 학업에 일조하게 되었다.

2000년대

30여년을 금속공학과와 함께한 윤병하교수님(2000년 2월)과 조현기교수님(2001년 2월)의 정년 퇴임식을 가졌으며 후임으로 Kyoto대학(일본)에서 공학박사(야금학)를 취득한 후 포항종합제철에서 근무하시던 손호상교수님(2001년 3월)과 University of Wisconsin에서 공학박사(금속공학)를 취득한 후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근무하시던 이승훈 교수님(2002년 3월)이 부임하여 교수진이 다시 보강되었으며, 2004년에는 KAIST에서 공학박사(재료공학)을 취득하신 이호성교수님이 부임하였다.
그리고 2002학년도부터 무기재료공학과와 함께 모집단위를 통합하여 재료공학군으로 신입생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변화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학과명칭을 금속신소재공학과로 2006년 변경하고 2007년에는 무기재료공학과와 완전히 통합을 이루어 신소재공학부로 다시 태어났다. 이로써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한편 연구와 후학양성에 누구보다 열성적이셨던 김대룡 교수는 본인의 투병사실도 숨긴 채 강의와 연구에 혼신을 다하셨고, 2007년 모든 학기가 정리되고 나서야 투병사실을 구성원에게 알리셨다. 그러나 끝내 운명하심으로서 모든 이들은 크나큰 아픔과 상실감을 느끼게 되었다.

2010년대

2012년 40년간 금속과의 발전과 후학양성을 위해 힘쓰신 정인상교수가 퇴임하고 당해 3월 교토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손인준 교수가 부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손호상교수가 공과대학장에 취임하게 되어 공과대학의 발전을 위해 봉사하게 되었다. 2015년 2월 권오종교수가 지병으로 인해 정든 교정을 떠나 명예퇴직을 하게 되었다.